The Brief Wondrous Life of Oscar Wao
Junot Diaz/Penguin Group USA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문학동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먼저 좀 하겠습니다.

2005년, 또는 2006년 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시간에 사는 친구가 놀러오라고 하기에 별 생각없이 뉴욕에서 미시간까지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차로 보통 10시간이 걸린다는데, 버스를 갈아타는 시간까지 합치니 16시간에서 18시간 걸렸습니다. 제 생애 두 번 다시 미시간에 버스를 타고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몇 번이나 마음 속으로 되뇌었지요. 버스를 타는 가격이나 비행기를 타는 가격이나 별반 차이도 없었습니다. 미시간에서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미시간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는 순간 또다시 미시간에 도착하기까지의 악몽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버스에 올라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잘생긴 히스패닉 남자아이가 걸어와서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옳거니 싶어 곧바로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미시간에 가는 시간 내내 독하게 자던 옆사람 덕분에 무료함을 달랠 길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혹시나 친해져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좀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저희는 간단히 소개를 주고받았고, 전 그 아이가 열여덟살이며 뉴저지에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유쾌하고 선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질 이야기가 그리 즐겁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도미니카 출신으로, 친아버지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일찍이 양아버지와 재혼하셨고, 아래로 배다른 동생이 두 명 더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가 열 살때 돌아가셨고, 그 뒤로 그는 남은 가족들 - 양아버지와 동생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양아버지와의 사이는 좋았지만 2년 전 양아버지가 총을 맞아 숨졌고, 배다른 동생 두 명과 오갈데 없어진 그는 부유한 친척 아주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친척 아주머니는 그건 그의 문제일 뿐이지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며 야멸차게 내쫓았고, 결국 가난하지만 삼남매를 받아들여준 다른 친척 아저씨에게 몸을 의탁해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기 때문에 영어를 전혀 못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영어는 미국에서의 짧은 거주기간과 교육혜택을 받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친척 아저씨는 동생들을 아예 학교에도 보낼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고민하다가 친척 아저씨를 설득해 밀항선을 타고 미국에 오게 됩니다. 미국에서 자신이 돈을 벌어 부칠테니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주라고 하면서요.

미국에 오게 된 그는 조지아 주에서 1년 반동안 식당 청소부로 일을 했습니다. 시급 9달러는 그에게 큰 돈이었고, 돈을 아끼면 친척 아저씨에게 보낼만큼도 모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불법체류자라는 것이 식당 운영자에게 발각되었고 그는 조지아를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하기 위해 떠돌아야했던 했습니다.

그는 같이 밀항선을 탔던 동료 몇 명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 중 미시간에 있던 사람이 오면 일자리를 알아봐주겠노라고 했고, 그래서 겨우겨우 돈을 모아 미시간에 갔습니다. 그러나 미시간에 도착하자 그 사람은 말을 바꾸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했지요. 그래서 간신히 하룻밤을 묵고 뉴저지에 있는 다른 동료를 찾아가던 참에 저를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뉴저지에 가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뉴저지는 뉴욕보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심해서, 불법체류자가 일자리를 찾는 것은 아주 힘들기 때문이었죠. 그는 당연히 그렇지 않지만 지금 자신에게 달리 방도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습니다. 물론 과장된 사실과 왜곡된 사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작 열여덟살짜리 남자아이가 수중에 돈이라곤 몇 푼 없고 피붙이 하나없는 외국 땅에서 떠돌고 있다는 것은, 저에겐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열여덟살, 보통 아이라면 학교에 다닐 나이인데도!

그에게 돈이 얼마나 남았냐고 묻자 그는 저에게 구겨진 20달러짜리 지폐 두 장과 1달러짜리 지폐 몇 장을 보여주었습니다. 미시간에 다녀오면서 생각보다 돈을 많이 쓰지 않았기에 저는 수중에 남아있던 돈을 전부 털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망설이다가 뉴저지보다 뉴욕에 오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그를 데리고 뉴욕으로 오고, 일단 싼값에 중국인이 하는 숙소를 찾아내 보증금과 한달치 방세를 지불해주었습니다. 불법체류자인 히스패닉들이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무작정 한인 식당들에 전화를 걸어서 그를 고용해줄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물었습니다. 후에 생각해보면 전 매우 무모했습니다. 한인 식당들이 히스패닉을 많이 고용하긴 하지만,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려는 곳은 거의 없거든요. 그때 알게 되었지만 일반적으로 식당측에서는 히스패닉들이 많이 등록하는 직업소개소에서 소개를 받아 고용한다더군요. 간신히 한군데를 찾아내어 그를 데려갔습니다. 몇시까지 오라는 말에 시간에 늦지 말라고 값싼 시계도 하나 사주었습니다.

그렇게 그와의 인연은 끝났습니다. 그가 처한 상황이 정말 안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도와주게 되었지만, 저는 그가 절 돈이 나오는 창구로 생각하길 바라지는 않았거든요. 힘들 때마다 제가 방세를 지불해주고 일자리를 찾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저는 제가 충분히 할 도리를 했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게 그가 먹고살만큼 생활이 나아졌다면 그것으로 다행이고,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통속적으로까지 보이는 저 도미니칸 남자 아이의 이야기가 실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어쩌면 수많은 도미니칸들이 겪는 일상적인 일일지도 모른다는 걸 이 책을 읽고서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현대를 사는 평범한 한국인 이민자로서 저는 그러한 삶이 책 속에서나 존재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물론 소말리아같은 무정부상태의 무법지도 존재함을 알고,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책이나 언론매체 통한 간접경험이었고, 솔직히 저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뉴저지에 사는 도미니카계 남자아이였고, 저역시 같은 이민자로서 오스카의 가족에게 공감을 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습니다.

후놋 디아스의 첫 장편 소설이자 퓰리처 상 수상작인 이 책은 저에게 잊고있었던 이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수많은 나라에 대해 배웠지만 남미 국가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도미니카가 트루히요라는 지독한 독재자의 그늘을 거쳐왔다는 것도, 또 그 때문에 사회가 퇴보하였으며 그 사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해왔는지도 몰랐습니다.

아, 책의 내용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정말이지 괴로운 일입니다. 많은 분들은 이 책을 "재밌고 유쾌하게" 읽었다고 적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 읽은 후 이 책의 리뷰들을 많이 접했지만, 이 책에 "재밌고 유쾌하다"는 수식어를 정말로 붙일 수 있는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리 고상한 언어로 채워져있진 않지만 - 이 책에서 유일하게 고상한 언어를 구사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뚱보 오타쿠 주인공인 오스카입니다 - 이 책의 문체는 유머감각이 풍부하고 심지어 발랄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체의 가벼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저에게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저에게는 이 책이 두 권 있는데, 읽던 중 곳곳이 눈물로 뒤범벅이 되고 너덜너덜해져서 도저히 다시 읽을만한 상태가 아니라 새로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몇 번이나 눈물이 날 것 같아 책을 덮고 한참 뒤에 다시 펼쳐 읽으면서도 저는 끝내 눈물을 쏟아내야 했습니다.

때로 책 속의 인물들이 당할 고통들이 예상되어 책장을 넘기기 겁나기도 했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또 문맥으로 미루어 짐작했던 것들이지만 고문당하고 폭행당하고 강간당하는 장면들은 여전히 저에게 힘들었습니다.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압도적인 공포와 독재정치는 차라리 희극적으로 보였습니다. 후놋 디아스는 잔혹함을 승화시켜 희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에도 훌륭한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괴로운 것은 그것이 실제로 많은 이들이 겪은 일들이고 아직까지도 그 잔재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과 무지로 점철된 그 잔재의 희생자 중 하나가 제가 만난 한 명의 소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역시도요.

마지막 부분에서 시간이 많이 흘러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음 속에 깊게 남습니다. 그들은 그래도 결국 삶이 지속되고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괴로운 나날들과 저주가 퍼부어져도, 그들은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가겠지요.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그 순간까지 전 눈물을 흘려야했지만, 그것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니까요.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해서 이건 정말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스페인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Posted by Pesadilla :